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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by 마루온의 하루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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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1980년 5월, 광주의 거리에서 울려 퍼진 시민들의 외침은 단순 저항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폭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으로 모였던 수많은 이들의 용기였죠.

저는 광주 출신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시절 광주 출신 선생님을 통해 5.18에 대해 알게 되었고 헌책방에서 관련 도서를 사서 보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참으로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성인이 되었을 때, 노래 가사에 나온 광주 금남로에 갔었어요. 그날의 항쟁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번화한 거리에 놀랐습니다. 이 평화로움에 먼저 가신 분들이 생각이 나서 버스 안에서 멍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고 기억하는 일,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실천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왜 중요한지, 우리가 왜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

1980년 5월, 대한민국은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종말 이후 잠시 찾아온 민주화의 기회는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로 다시 억압받게 되었죠.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바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였습니다. 계엄령은 사실상 언론을 검열하고 정치 활동을 금지하며,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는 수단이었어요. 이러한 억압적인 조치에 저항하여 일어난 것이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정의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그들의 외침은 시위를 넘어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의 불씨였습니다.

시민 항쟁의 전개와 희생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계엄군은 곤봉과 총칼로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이내 광주 전역으로 분노가 확산됐습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무기고를 열고, 차량을 몰고, 부상자를 돌보며 도심 곳곳에서 항쟁을 이어갔습니다.

5월 18일 전남대 학생 시위, 계엄군 투입
5월 21일 시민군 결성, 전남도청 장악
5월 27일 계엄군 도청 진입, 항쟁 종료
출처: 오월그날(박남선)
출처: 오월그날(박남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계엄군의 폭력과 진압 작전

정부는 무장 시민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특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했습니다.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며, 총기 사용은 물론 헬기 사격까지 자행됐죠. 그 결과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한 조직적 학살이었습니다.
  • 시민에 대한 무차별 구타 및 총격
  • 병원과 성당 등 피난처에도 무력 진입
  • 사망자 대부분이 비무장 상태
  • 사건 이후 수많은 증거 은폐 시도

언론 왜곡과 침묵의 강요

1980년 당시 언론은 계엄령 하에서 정부의 검열을 철저히 따랐습니다. 광주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현실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민들을 '폭도'로 묘사하는 왜곡 보도가 이어졌죠. 언론인들 역시 권력의 압박에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심지어 일부 보도는 계엄군의 잔혹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은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왜곡은 광주 시민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었고, 진실을 알리는 일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진실 규명과 국가의 책임

19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본격화됐습니다. 국회 청문회, 검찰 수사, 군 관계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당시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과와 처벌도 이루어졌느나 진실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진상규명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국가 책임은 단순한 사과로 끝나선 안 되는 것입니다.

진상 규명 활동 내    용
1995년 특별법 제정 전두환·노태우 내란죄 기소 가능
1996년 형사재판 전직 대통령 유죄 판결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헬기사격, 암매장 등 조사 지속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광주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으며 권력은 끊임없이 감시받아야 합니다. 5.18의 교훈은 지금도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날의 희생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 민주주의의 가치는 기억과 기록을 통해 지켜집니다
  • 민주 시민 의식과 권력 감시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 5.18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교훈입니다
  • 우리 세대의 책임은 ‘그들의 희생을 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 보고서 상세 분석

2024년 3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4년간의 조사를 마치고 방대한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항    목 내    용
사망자 수 166명 (총상 81.3%, 10대 58명)
부상자 수 2,617명 (총상 337명, 13세 이하 32명)
행방불명자 179명 (105명 신규 확인)
사망 집중일 5월 21일 (67명, 40.4%)
주요 사망 지역 전남도청, 금남로, 주남마을, 송암동
특이 사항 DNA 교차검증 도입, 계엄군 명령 증언 확보

보고서는 책임 있는 대응과 치유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를 직면하는 용기,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출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1.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왜 ‘폭동’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나요?

당시 정부와 군부는 시위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고, 언론 통제를 통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2. 당시 희생자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공식 집계로는  5·18 민주화운동 기간 사망 166명, 행방불명 179명, 부상 2천617명이라는 정부차원의 조사결과가 있었습니다. 

3. 왜 광주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졌나요?

광주는 전두환 신군부가 군부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본보기 진압’을 시도한 지역이었습니다. 민주화 요구가 강하게 나타난 지역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4. 오늘날 젊은 세대는 왜 5.18을 기억해야 하나요?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희생과 투쟁을 기억해야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죠. 5.18은 우리 모두의 역사입니다.

광주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마음껏 말하고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는 그 모든 자유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https://youtu.be/m9JeQXgUUhU?si=85AYtwhHUOVHXUF-

 

고등학교 때 처음 들은 오월항쟁 노래로 가사 하나하나가 너무나 마음 아픈 노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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